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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1.♡.30.169) 댓글 0건 조회 1,959회 작성일 17-05-22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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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무슨 말이요?”

“그 애는 회산군(檜山君)의 시녀입니다. 궁중에서 나고 자라 문 밖을 나서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전에 내가 본 날은 어인 나들이었소?”

“그 때는 마침 그 애 부모의 제삿날이라 제가 회산군 부인께 청하고 겨우 데 려왔었지요.”

“….”

“영영은 자태가 곱고 음률이나 글에도 능통해 진사(회산군을 말함)께서 첩을 삼으려 하신답니다. 다만 그 부인의 투기가 두려워 뜻대로 못 할 뿐이랍니다.”

김생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탄식하였다.

“결국 하늘이 나를 죽게 하는구나!”

노파는 김생의 병이 깊은 것을 보고 안타까워했다. 노파는 그렇게 김생을 바라 보고 있다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요? 그, 그것이 무엇이오? 빨리 말해 보시오.”

“단오가 한 달이 남았으니 그 때 다시 작은 제사상을 벌이고 부인에게 영아를 보내 주십사고 청하면 그리 될 수도 있습니다.”

김생은 그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뻐했다.

“할머니 말대로 된다면 인간의 오월 오월은 곧 천상의 칠석이오.”

김생과 노파는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영영을 불러낼 계획을 세웠다. 

 

수심은 비가 되고 

 

마침내 노파와 약속한 날이 되었다. 김생은 날이 밝기도 전에 그 집으로 달려갔 다.

“일이 어떻게 되 가오?”

노파는 아침도 먹기 전에 달려온 그가 우스웠는지 미소를 머금었다.

“부인께 간절하게 부탁하였더니 처음에는 거절하셨습니다. 진사께서 영아의 출 입을 엄히 금하기 때문에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 제가 다시 간곡히 부탁하였더 니 진사께서 출타하실 일이 있으니 그 때라면 가능할 것이라 했습니다. 영아가 오긴 오겠지만 진사님 출타 시간을 알 수 없어 언제 올지는 모릅니다.”

김생은 노파의 말에 기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여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했다. 그는 문을 활짝 열어 놓고 밖을 내다보며 영영을 기다렸다. 

그런데 해가 거의 오시(午時, 낮 11시 30분부터 13시 30분까지)가 다 되어도 나타나는 그림자가 없었다. 김생은 안절부절못하다가 일어서서 부채를 휘둘러 기둥을 치 면서 그 노파를 불렀다.

“바라보고 있으니 눈이 아프고, 근심하니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소. 행인들이 가까워졌다가 곧 다른 데로 가니, 그 때마다 내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소.” “지성이면 감천이라니, 도련님은 좀 안정하시지요.”

두 사람이 이런 말을 주고받는데 먼 데서 신을 끄는 소리가 들려 왔다. 김생은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발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그 발소리는 점점 노 파의 집 쪽으로 오는 것이었다. 김생이 창으로 달려가 바라보니 과연 오는 사람 은 꿈에도 그리던 영영 낭자였다.

김생은 기뻐 손뼉을 치는데 마치 어머니를 본 아이처럼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 러나 영영은 문 앞 버드나무에 붉은 말이 매어 있는 것을 보고 안을 살피며 머 뭇거리면서 들어오지 않았다. 노파는 영영을 불렀다.

“빨리 들어오너라. 여기 도련님은 우리 집에서 손님을 전송하러 오신 분이니 걱정할 것 없다.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늦었느냐? 네가 못 오는 줄 알고 네 부 모 제사를 그냥 지냈구나. 어서 들어오기나 하려므나.”

영영이 들어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노파는 술상을 차렸다. 그리고 김생과 더불어 잔을 들고 서로 권하였다. 몇 잔 술이 오갔을 즈음 김생은 미소 지으며 영영에 게 말했다.

“낭자도 이리 가까이 앉으시오. 내가 잔을 채우겠소.”

그러나 영영은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들지 않았다.

“네가 깊은 궁중에서 자라 세정(世情, 세상 물정)을 알지 못한다지만 술 권하는 예의조차 모르느냐?”

노파가 그렇게 말한 뒤에야 영영은 잔을 받아 들었다. 김생이 영영에게 술을 부 어 주었고, 그녀는 주저하다가 술잔을 잠깐 입술에 대기만 했다. 잠시 후 그 노 파는 술에 많이 취한 것처럼 비틀거리더니 영영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많이 취한 것 같구나. 좀 쉬어야겠으니 네가 잠시 도련님을 모시고 있거라.”

노파가 자리를 피해 주어 김생과 영영만 남았다.

“삼월에 홍화문 앞길에서 서로 본 적이 있는데 낭자는 그 때를 기억하겠소?”

“말은 기억하오나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겠습니다.”

“사람이 말만 못하오?”

“말은 보았으나 사람은 보지 못했나이다.”

“낭자는 나를 놀리는구려. 비록 얼굴이 파리하고 몸이 말라서 그 때와 다르긴 하지만 설마 날 모르겠소? 하기야 낭자는 내가 누구 때문에 이리 된 것인지 알 까닭이 있겠소?”

김생은 안타까운 눈으로 영영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영영도 얼굴이 붉어지는 것 이 분명 김생을 아는 것 같았다. 

“하기야 낭자는 내가 아닌데 어찌 이 마음을 알겠소?”

“도련님은 제가 아닌데 어찌 저의 마음을 아시리오?”

두 사람은 잠시 눈이 마주쳤다. 영영은 다시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한 번 멀리서 바라보고 그리워한 지가 이미 달이 지났는데 이제야 만나 보게 되다니, 참으로 세상이 원망스럽소. 낭자 때문에 죽을 뻔했던 내 목숨은 오늘을 기다려 겨우 살아 남았소.”

김생의 목소리는 저도 모르게 떨려 나왔다. 그러나 영영은 김생의 말이 끝날 무 렵 일어서야 했다.

“진사님께서 돌아오시면 먼저 저를 찾으십니다. 그만 가야 합니다.”

김생은 영영의 말에 금방 시무룩해졌다. 

“도대체 어찌하면 좋겠소? 벌써 작별할 때는 다가왔고 다시 만나기는 어려우 니….”

영영이 다시 눈을 들어 김생을 쳐다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안타까운 한숨이 흘 러 나왔다.

“이 달 보름 밤에 진사님은 밖에서 다른 왕자님들과 달을 감상하신다 합니다. 그 날 궁의 무너진 담 쪽으로 오십시오. 도련님께서 오신다면 무너진 담 옆의 작은 문을 열어 놓겠습니다. 그 곳에서 동쪽으로 가면 작은 방이 있사오니 도련 님께선 거기에 계십시오.”

김생은 그제서야 마음을 놓고 영영과 작별하였다. 김생은 노파의 집에서 나와 멀어져 가는 영영을 보고 저도 모르게 시 한 수를 읊었다. 

 

깊고 깊은 저 궁 안에 고운 님 갇혀 있네 

손을 놓아 작별 후로 서로 소식 아득하여라 

이 날도 잊지 못해 예쁜 얼굴 알뜰한 사랑 

하루 속히 서로 만나 좋은 인연 맺었으면 

지난 일을 생각하니 수심은 비가 되고 

가기(佳期)를 고대하니 하루 해가 한 해 같네 

십오야 달 밝은 밤 고운 님 찾고지고 

다락 올라 달을 보며 그 옛날을 다시 찾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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